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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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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작성일09-10-21 17:51 조회4,649회 댓글0건

본문

제5부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의 참혹한 시련을 이겨낸 호남의 등불-

사법정의 세우기 위해 ‘극단의 길’도 생각했던 ‘의인(義人) 박주선’

‘대법원 무죄판결’-하늘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가족들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졌다”

박주선의 존재이유-‘애끓는 가족애(家族愛)’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진실과 양심의 승리”

‘박주선 무죄 후폭풍’ - 정치권 ‘검찰권력 남용’ 맹공

박주선을 향한 ‘거대한 음모의 내막’

‘호남의 순교자 박주선’ 무등산은 알고 있다

사법정의 세우기 위해 ‘극단의 길’도 생각했던 ‘의인(義人) 박주선’

‘대법원 무죄판결’ - 하늘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명성을 날렸던 대한민국 최고의 ‘명검사 박주선’은 2심 법원의 상상할 수 없는 법정구속으로 세 번째 다시 들어 온 낯설지 않은 서울구치소 한 평 감방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구보다도 법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인 그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문득 ‘재판관의 눈을 멀게 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밖에 할 수 없다’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 구절을 되뇌이면서 그는 “아, 하느님이 재판관을 눈멀게 하고 넋을 잃게 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나왔나 보다. 이건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뜻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는 결연한 의지로 직접 상고 이유서를 다듬었다. 대법원에 상고를 하고 판결을 기다리면서 감방 천정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이제 마지막 길이라는 생각에 불안과 초조가 엄습해 왔다. 그런 절박한 순간에도 그는 “하늘에서 하는 일이니 하늘이 구제해 주겠지”라는 기대와 희망에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대법원 판결이 마지막인데 여기서도 사법부의 정의가 세워지지 못한다면 정녕 내가 이 땅에 그대로 존재할 이유가 있겠는가. 사법부의 정의를 위해 내가 밀알이 되어야 겠다”며 ‘극단의 길’까지 각오했다.

2005년 2월 18일. 대법원은 ‘피고인 박주선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하면서 ‘피고인 박주선 즉시 보석 석방’. 하늘은 결코 박주선을 버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돈을 건넨 현대건설 임모 전 부사장이 증인채택 관련 청탁을 했다는 것이 인정되지 않은 점, 임씨와 피고인은 고향 선후배로 후원금을 줄 정도의 친분이 있는 점, 국회의 정몽헌 회장 증인채택 움직임은 후원금 제공 후에 이뤄진 점, 정치자금으로 적법하게 후원금 처리한 점” 등을 무죄 취지 파기환송 이유로 제시하며, “원심은 피고인이 청탁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도 포괄적인 대가관계에 있는 뇌물이라고 판단한 것은 직무관련성에 관한 법리(法理)를 오해(誤解)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즉시 보석 석방”을 명령했다. 대법원에서 보석 석방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 밀려오는 회환, 한없이 흘러내리는 ‘사나이의 눈물’. 이제 한 번 엉엉 울어보고 싶은 그였다. “내가 검사생활 할 때 혹시 억울한 사람을 억지로 죄인으로 만들지나 않았을까? 혹시 그 사람들 원한 때문에 내가 그 업보로 이렇게 당하는 것은 아닐까?” 대법원 무죄취지 판결문을 받아 든 ‘가슴 뜨거운 남자’ 박주선은 하늘을 응시하며 깊은 자성과 사색에 빠져 들었다.

“가족들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졌다”

박주선의 존재이유 -

‘애끓는 가족애(家族愛)’

박주선 의원은 총 336일 동안, 부패정치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한 평 감옥에서 치욕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국가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개인의 인격과 명예는 차치하고라도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진다고 했다. 자기로 인해 가족과 친지들이 남에게 손가락질당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특히 감수성 예민한 세 아들을 생각하면 전신에 오는 전율을 참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에게는 홀어머니와 아내, 아들 셋, 그리고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온갖 행상을 다하며 자신을 키워 냈고, 중학교 입학 때는 피를 뽑아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던 하늘같은 어머니였다. 온갖 고초를 겪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노모는 기억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될까 봐 박 의원의 구속을 숨기고 “미국에 갔다”고 했었다고 한다. 요즘은 어머니 손잡고 산책하는 것만도 행복하고 감사하단다.

현모양처의 전형인 박 의원의 아내 이현숙씨는 곱게만 살아왔던 지고지순한 여자다. 그런 사랑하는 아내를 팔자에도 없는 옥바라지에, 살벌한 선거판에 내몬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고 한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않고 남편의 결백을 믿고 가족을 챙기며 꿋꿋이 견디어 준 아내가 눈물겹도록 고맙단다. 많은 교도관들은 부인이 남편을 면회하면서 겸손하고 검소하면서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남편을 위로하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99년 12월 처음 구속될 당시 11살 초등학생이던 막내가 지금은 18살 고등학생이 됐고, 고등학생 중학생이던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믿고 탈선하지 않고 꿋꿋이 학업에 전념해 준 아들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단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두 형제를 다 가르칠 수 없는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 잘하는 형이 대학 가라. 난 형을 위해 돈을 벌겠다”며 오직 형을 위해 지금까지도 자신을 희생하며 모진 일을 도맡아 하는 그런 동생이다. 총 336일 동안 형의 구속 수감생활을 뒷바라지 한 동생의 헌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일 것이다.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진실과 양심의 승리”

2005년 5월 27일 서울고법.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돌려보낸 고등법원 파기 환송심에서 재판부는 ‘박주선 무죄’ 최종 확정 판결을 선고했다.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라는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99년 12월부터 2005년 5월 27일까지 햇수로 7년. 감옥생활 336일. 한 평 감옥에서 두 번의 새해를 맞았다. 하늘이 내린 시련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죄판결에 즈음한 박주선 의원의 성명 발표는 눈물로 얼룩진 절규였다. 이를 지켜 본 국민들은 함께 울었고 함께 분노했다.

“저는 오늘 그동안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갇혀 있던 마녀사냥의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마침내 광명의 세상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어떤 사람도 이 땅에서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죄없이 법정에 서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염원하면서 마지막까지 저의 결백을 믿고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불법구금으로 인하여 인권을 처참히 유린당했고, 부정부패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인격과 명예를 송두리째 짓밟힌 것은 물론, 16대 국회의원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구속 중에 임기종료를 맞이하여 국민과 지역구 주민에게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으며,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득이 옥중출마했으나 공정한 선거운동의 기회마저 박탈당함으써 낙선의 분루를 삼켜야 했고, 심지어는 울분과 분노로 심장병까지 얻어 대수술을 거쳐 가까스로 생명을 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무런 죄없이 주위로부터 괄시와 냉대를 당하는 등 필설로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묻고 누구로부터 어떤 보상을 받아야만 이 기막히고 피눈물 나는 상황을 치유하고 짓밟힌 저의 인격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검찰 수사착수 시점부터 결백을 주장하면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면 가슴이라도 열겠다. 단 돈 1만 원이라도 부정한 뇌물을 받았다면 속죄하는 심정으로 사회와 인연을 끊고 아프리카 오지라도 들어가 살겠다’고 절규했지만, 가장 공정하고 이성적이어야 할 언론과 시민단체마저도 검찰의 억지 주장에 현혹되어 저의 호소를 외면하면서 도리어 사악한 정치검찰의 부도덕한 무법횡포를 비호하여 저를 검찰살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사필귀정의 역사적 천리는 또다시 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무죄판결은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며 진실과 양심의 숭고한 승리입니다. 오늘 저에 대한 무죄판결을 계기로 이 땅에서 다시는 표적수사로 인해 저와 같은 제2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는 그동안 그토록 결백을 주장했던 옷로비 의혹 사건, 나라종금 사건,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으로 3번이나 부당한 구속을 당하여 3번 모두 무죄를 받았습니다. 한 인간에게 내려진 3번의 구속과 3번의 연속적인 무죄판결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사례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저 한 개인의 아주 특별한 안타까운 일로 폄하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정치권력이 정치보복을 획책하고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 역을 자임하며 사법부마저 여론의 속박을 받는다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박주선은 다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 대한 이번의 무죄판결이 우리사회에서 성역화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왜곡된 사법권력이 진정으로 개혁되는 시발점이 되고 아울러 합리적 이성이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전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의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은 2005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주선 소청문회’가 열려 정치권과 언론의 최고 관심사로 대두 되었고 이와 함께 검찰·사법개혁의 기폭제로 작용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검찰의 구속 수사 남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법무부장관의 ‘사상 초유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하여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사태를 맞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10월 16일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여러분도 다 아는 바와 같이 검찰의 판단이 항상 옳지는 않다.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한 거듭된 무죄가 검찰권 남용으로 지적된 바 있다”고 밝혀 결국에는 노무현 정권 차원의 반성과 유책(有責) 시인을 이끌어 냈다.

‘박주선 무죄 후폭풍’-

정치권 ‘검찰권력 남용’ 맹공

박주선에 대한 처참한 인권탄압의 공범이라 할 수 있는 국가권력과 언론, 시민단체에 보낸 박주선의 메시지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의사실 공표와 인권침해’를 주제로 한 공청회를 개최했고 ‘박주선 인권유린 사태’를 주요 피해사례로 다루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자성의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박주선 죽이기’의 공범 역할을 했던 신문 방송들은 박주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과잉 편파수사, 그리고 인권침해에 대해 전례없는 기획특집 취재까지 하며 앞 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박주선 무죄 후폭풍’은 정치권에서 더욱 거셌다. 여야를 막론하고 박주선 의원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인권유린 행위를 국회 국정조사 등 ‘박주선 청문회’를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특정인을 겨냥한 편파, 표적수사인데다 혐의 사실이 확정되기 전에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려 당사자의 인권침해와 명예훼손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2005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관련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피해자인 박주선 의원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10월 11일 법무부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실시된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박주선 전 의원 표적수사로 인한 인권 유린 문제를 집중 질타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박주선 전 의원은 “검찰은 제 친정이었고, 또 국법질서를 수호하는 국가기관으로서 양심과 명예를 먹고 사는 조직입니다.

이 땅에서 다시는 제2, 제3의 박주선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제도개선의 촉매제 역할을 해야겠다는 일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제 충정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며 제 증언이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검사들에게 흠이나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심경을 피력했다.

이 자리에서 최연희 법제사법위원장은 “박주선 증인은 검사시절 대인의 풍모를 가지고 있어서 검찰내 선후배들에게 많은 신망을 받았다. 오늘 국감 증언에서도 자신의 한(恨)을 쏟아내기 보다는 검찰이 개선해야할 부분을 많이 얘기해 줬다. 역시 대인다운 풍모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오늘 어렵게 증인으로 출석한 박주선 증인의 얘기를 깊이 새겨 다시는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조 의원은 “정부차원의 과거사 정리가 한창인데 박주선의원이 겪은 억울한 피해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 법무부나 검찰이 과거사 정리를 하는 차원에서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박주선 전의원과 같은 억울한 일이 없어지겠가?”라는 김재경 의원의 정책적 질의에 대해 박주선 전 의원은 “검찰에 대한 결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야 하고 무죄 평정을 엄격히 적용해서 무죄 검사에 대해서는 인사상 반영을 함과 아울러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치검사의 무모한 수사를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박 전 의원은 또 “검찰은 명예를 먹고 사는 집단이고, 대검 중수부 검사들은 최고의 수사 능력이 있는 검사들인데 외압이 아니라면 어떻게 유·무죄를 가리지 못하느냐”며, “수사 검사는 무죄 난다는 의견을 올렸고, 중수부장은 불구속하겠다고 하다가 사흘 만에 구속했는데 `마녀사냥식 외압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에 대한 정치적 탄압임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면서 박 주선 전 의원은 자신을 수사했던 수사 검사들을 모두 용서했다며 국정조사를 통해 정치적 외압의 실체를 밝혀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5년 3월 30일에 실시된 김종빈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박주선 의원에 대한 문제를 집중 거론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은 “박주선 전 의원의 경우 검찰권 남용과 무리한 수사 결과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극심한 피해는 누가 보상하는가? 몇 푼 안되는 형사보상금으로 구제가 되겠는가? 박 전 의원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받았는데 담당 검사에게는 어떤 조치가 있었나?”라고 질타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도 “3번 구속 3번 무죄가 된 사람이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1%의 정치검사가 문제다’라고 했다. 이 분은 검찰에서 명성을 날렸고 청와대에서 주요 요직도 지냈고 국회의원도 했다. 법원판단이 잘못 되었는가 검찰수사가 잘못 되었는가? 이 사건은 검찰 내부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한편 2005년 6월에는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검찰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강도 높게 비판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검사들에 대하여 출세와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 민생에 관련된 범죄는 건성으로 처리하면서, 선거범죄 사건이나 뇌물사건 같은 광(光)나는 사건에 달려들어서는 수사력을 남용해 가며 편파수사를 자행하는 불공정한 기관으로 인식되어 있다” 면서 “그런 믿음은 최근 박주선 전 의원의 3차례에 걸친 무죄사건에 이르러 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어서 “솔직히 말씀드려서 옷로비 사건에 관련된 박주선 전 의원과 김태정 전 법무장관의 공소장과 대법원 판결문을 한 번 읽어 보십시오. 대법원 판결문에서 잘못된 부분이 한 군데라도 있는지 말입니다.” 라며 강도 높게 비판해 국민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박주선을 향한 ‘거대한 음모의 내막’

‘호남의 순교자 박주선’

무등산은 알고 있다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 왜 그랬을까? 박주선을 향한 ‘끊임없는 거대한 음모’. 그 내막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인간에게 가해진 이러한 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잔혹사의 시나리오에는 누가? 왜? 라는 수수께끼가 도사리고 있다.

그 누구도 밝혀내길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도, 검찰도, 사법부도, 정치권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박주선 죽이기’의 공동정범이라는 ‘진실 판결’에 그 누가 감히 상소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박주선의 ‘아내에게 바치는 눈물로 쓴 옥중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중략)...‘김대중 대통령을 이을 호남의 차세대 지도자는 박주선’이라는 정보기관들의 조사결과만 없었던들, ‘열린우리당으로 가자’던 배신 분열주의자들의 사악한 유혹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했던들, 또한 ‘재판정에서 이번 선거(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던 조언을 들었던들 오늘의 이런 탄압과 고통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생략)....” 그랬다. 박주선 탄압은 정치공학적 작용이라는 분석이 확산되었다.

DJ 이후 호남의 차세대 주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그러나 정치 초년생인 그에게 이토록 잔인한 탄압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박주선의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제1정책조정위원장으로 방송 신문과 각종 토론회장을 누비며 최전방에서 노무현 후보 대변 논객으로 탁월한 활약을 했던 박주선,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반드시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박주선, 자신의 지역구인 화순·보성에서 ‘득표율 전국 2위’를 기록했던 박주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중국특사로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나고 온 박주선, 그런 박주선이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됐다? 누가 왜 그랬을까? 박주선 제거의 실익을 현 정권에서 누가 누리고 있는가를 보면 실체가 보인다. 만약 박주선이 지금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곁에 있었다면 지금의 여당이나 참여정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누구든지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박주선 제거 전략은 치명적 실수였다고...

특히 우리나라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명실공히 최고의 막강한 수사기관이다. 가장 우수한 검사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그런 중앙수사부가 잘나가는 현역 국회의원을 구속하면서 유무죄 판단을 실수했다는 점은 상상할 수도 없다. 만일 실수라면 어떻게 한번도 아니고 3번이나 실수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실수라면 수사라인을 엄중 문책해야 함에도 문책은 커녕 수사검사를 비롯한 지휘라인에 있던 검사들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치권의 외압에 의한 수사라는 점을 검찰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군인의 총기사고를 엄중 문책하듯 국민의 인권을 다루는 검사의 검찰권 남용도 엄중히 다스려야 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검찰은 피해갈 명분이 없어지고 말았다.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이러한 검찰의 침묵에도 박주선에 대한 부당구속의 배후에는 정치적 음모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한 정황 증거들이 계속 드러나기도 했다.

2006년 4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매니페스토 서약식 때와 후보자 TV토론회에서 박주선 구속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가 박주선의 구속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죄송하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었고, 송두율 교수 구속때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주선 전의원의 구속은 부당했다”라는 취지의 발언해 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2005년 법무부 국정감사, 언론인터뷰,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통해 박주선 부당구속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거대한 정치적 음모의 권력 먹이사슬 때문인 것으로 밖에 볼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주선의 입장에서는 검찰에 대해 처음부터 억울한 부당구속이니 그 원인과 배후를 철저히 규명하여 재발방지를 하라는 주장이나, 검찰은 공개적인 입장표명은 못하고 있지만, 일부 수사검사는 머리좋은 박주선이 교묘히 법망을 빠져 나갔다고 자신들을 합리화 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까지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주선은 3번 구속 당하여 재판을 받으면서 모두 징역 8년6개월을 구형받았다. 검찰의 입장에서 보면 “중죄인”이다. 검찰이 얼마나 부실하고 엉성한 수사와 공소유지활동을 하여 이와같은 “중죄인”이 무죄선고를 받았다면 검찰은 당연히 박주선 구속의 원인과 배경을 밝혀 그 중죄인이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검찰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법질서확립차원에서 절대 필요하다. 또한 박주선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억울한 불법구속의 재발을 방지해야 할 당위성에서 보더라도 검찰은 당연히 박주선 구속의 원인과 배경을 규명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검찰의 인권옹호 의지 뿐만 아니라 국법질서확립의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는 주장을 피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검찰이 진상규명을 거부하면서 당시 수사책임자들을 영전, 승진시키고 있는 것은 박주선 구속이 얼마나 윗선의 정치적 압력이 작용했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반증이라는 주장도 피해갈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옷로비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뜻밖에도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부산출신 4선의원, 과학기술부장관 역임)이 박주선을 면회했다고 한다. 박주선과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이의원은 아무리 한나라당 소속의원이라지만 “박주선 비서관의 구속은 있을 수 없는 억울한 일이다. 하늘이 큰 일을 시키기 위해 내린 연단으로 알라”면서 “대통령이 될 사람이 읽어야 할 책” 등 3권을 선물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진짜 하늘은 박주선을 크게 쓰기 위해 단련을 시키고 있었다.

박주선 의원은 2005년 5월 27일 무죄 확정 판결 후 곧바로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인사했다. 그는 청와대서 법무비서관으로 사정(司正)과 공직기강(公職紀綱)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김 전 대통령에게 심려와 누를 끼친 점을 사과드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부르지 않았으면 검찰총장을 했을 사람인데...”라며 “나는 박의원의 청렴 강직한 성품을 믿어왔기 때문에 무죄라는 점을 확신했다. 세상에 이런 무도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아무래도 하늘의 뜻이 있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큰 뜻을 세우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랬다. 박주선 의원의 나이에 DJ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4번의 대통령 도전 끝에 당선됐다. 박주선은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3번 구속되고 3번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렇다. ‘3’이라는 숫자에 박주선 운명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박주선은 정녕 호남의 순교자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단호히 대답한다. 그렇다면 DJ는 알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역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독재권력의 폭압과 압제의 사슬을 끊고 자라온 ‘DJ 인동초’는 ‘거대한 음모의 암벽’을 뚫고 우뚝 솟아오른 소나무처럼 ‘박주선 인동초(忍冬草)’로 다시 피어날 것이라는 ‘민초들의 희망’이 그를 ‘아름다운 부활’로 메아리치게 하고 있다.

“호남의 순교자 박주선, 무등산은 알고 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바치며...

2008년 1월 정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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