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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주선
박주선과 호남, 시련에서 영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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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작성일09-10-21 17:52 조회3,29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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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1  1999년 말.


박주선은 ‘옷로비 의혹’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직을 그만둔 직후였다. 출두에 앞서 ‘박주선의 입장’을 발표, 그의 심경을 밝혔다.


“저는 4천억 원이 넘는 국민의 재산을 편취하고 해외로 빼돌린 ‘부도덕한 재벌 총수’의 죄악을 밝혀 단죄하고자 했고, 그 결과로 부도덕한 재벌이 꾸민 거대한 음모의 덫에 걸렸음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누가 죄를 짓고, 누가 단죄하려 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착시현상에 망연해할 따름입니다. 진실을 외면당하는 억울함에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배신감으로 몸을 떨기도 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역사와 시대가 제물을 필요로 한다면,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모셨던 대통령님과 국민의 정부를 위해서라면 당당히 고난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제가 믿는 역사의 신이 진실을 밝혀줄 것입니다.”

박주선의 ‘첫 번째 구속과 무죄’의 시작이었다. 옷로비 의혹 사건.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는 마녀사냥의 광풍이 지배했다.


#2  2000년 4월 15일. 박주선 선거운동사무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박주선의 당선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선거일을 불과 37일 남겨두고 그는 출마를 선언했다. ‘막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일당지배의 아성에 무소속으로 도전했다. 선거전문가는 물론 언론에서도 당선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반면 적이 된 민주당은 화력을 집중했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던 선거의 결과를 뒤집은 것은 바로 민심이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전국 각지에서 박주선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의례적으로 얼굴 보고 후원금을 내는, 소위 눈도장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스스로 연고를 찾아 선거운동을 벌였다. 박주선의 삶이 만들어낸 ‘사람의 힘’이었다.

민심은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민심은 정의와 진실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이때 박주선은 이미 개인 박주선이 아니었다. 민초들의 한과 염원을 품은 대리인이었다. 박주선은 1만 8천여 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권력은 박주선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민심은 박주선을 살렸다.


#3  2005년 5월 2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


재판부는 현대건설 사건과 관련 기소됐던 박주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99년 옷로비 사건, 2003년 나라종금 사건 무죄판결을 받은데 이어 세 번째다.

권력과 검찰의 박주선 죽이기는 실패했다. 그는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박주선은 ‘무죄 판결에 즈음하여’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진실은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사필귀정의 역사적 천리는 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무죄판결은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며 진실과 양심의 숭고한 승리입니다.

저는 그동안 옷로비 의혹 사건, 나라종금 사건,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으로 세 번이나 부당한 구속을 당하여 세 번 모두 무죄를 받았습니다. 한 인간에 대해 내려진 세 번의 구속과 세 번의 연속적인 무죄판결은 동서고금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저 한 개인의 안타까운 일로 폄하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정치권력이 정치보복을 획책하고,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역을 자임하며, 사법부마저 여론의 속박을 받는다면 언제든 제2, 제3의 박주선은 다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 대한 이번의 무죄판결이 우리 사회에서 성역화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법권력이 진정으로 개혁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합리적 이성이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전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같은날 오후.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인사차 찾아온 박주선에게 DJ는 말했다. “검찰에 있었으면 검찰총장이 될 사람인데……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를 보세요. 이겨낼 수 있어요.”


#4 2005년 10월 11일.

    

국회 법사위 법무부 국정감사장.


박주선이 ‘검찰권 남용’을 증언하기 위해 증언대에 섰다. 연달아 세 번 구속되고 세 번 무죄를 선고 받은 것에 대해 박주선은 “검찰은 명예를 먹고 사는 집단이고, 대검 중수부 검사들은 최고의 수사 능력이 있는 검사들인데 외압이 아니라면 어떻게 유·무죄를 가리지 못하느냐”며, “수사 검사는 무죄 의견을 올렸고 중수부장은 불구속하겠다고 하다가 사흘 만에 구속했는데 `‘마녀사냥식’ 외압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적 원한은 털어냈다. 박주선은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다 용서한다”며 “검찰 자체 조사나 국정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선은 마지막 발언에서 자신의 심경을 담담하게 전했다. 

“검찰은 제 친정이었고, 또 국법질서를 수호하는 국가기관으로서 양심과 명예를 먹고사는 조직입니다. 오늘 증인출석 요구를 받고 많이 부담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검찰의 흠에 대해서 제가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다시는 제2, 제3의 박주선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제도개선의 촉매제 역할을 해야겠다는 일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제 충정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며 제 증언이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검사들에게 흠이나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회법사위 위원장인 최연희는 이날 국정감사 마무리 발언을 통해 박주선의 증언을 평가했다. 

“박주선 증인은 검사 시절 대인의 풍모를 가지고 있어 검찰 내 선후배들에게 많은 신망을 받았다. 오늘 국감 증언에서도 자신의 한(恨)을 쏟아내기보다는 검찰이 개선해야 할 부분을 많이 얘기해줬다. 역시 대인다운 풍모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오늘 어렵게 증인으로 출석한 박주선 증인의 얘기를 깊이 새겨 다시는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박주선은 살아있었다. 권력과 검찰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정치권의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5  2005년 6월 16일 10시 반. 광주공항. 


박주선이 출구로 나오자 그를 기다리던 800여 명은 일제히 ‘박주선’을 연호했다. ‘김대중 전대통령 이후 최대의 인파.’ 한 정치인의 귀향을 환영하기 위해 이날 광주공항에 모인 인파를 언론은 이렇게 표현했다. 호남인들은 이렇게 박주선을 정치적으로 복권시켰다.

박주선의 귀향은 1년 5개월 만이었다. 1년 5개월이라면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이 그의 신상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박주선은 고무된 목소리로 도착인사를 했다. “끝까지 믿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일생을 바쳐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불명예를 떨쳐버렸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회의원직을 잃었고, 한때 전도유망했던 그의 정치적 앞날은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왜 그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한때 잘나가다 몰락한 이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만으론 해석할 수 없다. 물론  호남의 최고 인재로 불리웠고, 권력의 실세로 불리웠다. 그러다 세 번의 무고한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그의 인생은 소외와 수난의 역사를 간직해온 호남인들의 심금을 울릴만한 소재다.

그러나 동정은 지지자들을 뭉치게 하고 열광시킬 힘은 없다. 다만 짠한 마음만 남길 뿐이다.


#6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박주선.


그에게 호남민심은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 걸까. 박주선의 귀향에 대규모 환영인파가 모인 데는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변의 노력, 소위 ‘동원’에는 한계가 있다.

동원에 의해 서명을 한다면 수백 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수천 명, 수만 명을 넘어서면 이는 불가능하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숫자다.

박주선이 옷로비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1만 5천여 명의 지역민들이 석방을 원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같은 민중의 힘이었다. 2000년 봄 3만여 명의 지역주민들이 서명하여 ‘박주선 국회의원 추대운동’에 나선 것이다.

호남인들은 정치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다. DJ라는 지도자를 위해, 독재정권의 탄압을 이겨내고 소외된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다. 누가 선동하거나 조직하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 이심전심으로 통했다.

그들은 웬만한 일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웬만한 정치인에겐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박주선에게 그들은 마음을 줬고, 그를 위한 눈물을 흘렸다.

한마디로 설명해선 이해할 수 없다. 박주선이 살아온 길, 박주선의 세 번의 구속과 무죄가 의미하는 바를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박주선에게 남겨진 것은 없다. 모든 영광과 권력은 과거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같은 민중들의 지지와 기대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그에 결탁한 검찰은 박주선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그를 살린 것은 진실이었고, 민중의 힘이었다. 이것이 박주선의 힘이다. 


#7  호남민심은 DJ를 이을 차세대 리더를 기다린다.


호남민심은 DJ라는 카리스마가 사라진 뒤 방황하고 있다.

호남은 하나의 공동체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소외로 인해 정서적·정치적 유대감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박주선은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5·18 화해론’과 ‘호남인재발굴론’을 주장했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선언인 셈이다.

박주선은 “이제 5·18 민주화운동을 방해하고 탄압했던 세력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화해와 용서를 했다고 하지만 마음 속으로의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안됐다”며 “반역사적인 저주세력이 아니라면 전국정당화를 위해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호남인들이 정치적 선택의 폭을 스스로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포용론을 폈다.

호남인재론과 호남균형추론 역시 미래지향이라는 맥락에 서 있다. 박주선은 “호남에 인재가 없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인재를 발굴해 키워내자”고 역설했다.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뭉치게 하는 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없이 불가능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을 특정 정치인이나 지도자에게서 발견했을 때 민중들은 열광한다. 한 정치인의 인생역정에서 그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의 일체감을 느끼며 동시에 그를 통한 극복과 미래로의 전진 의지를 가다듬는다.

한 정치인에 대한 대중적 열광과 지지는 곧 대중들의 현재 삶에 대한 아픔의 표현이고, 적극적 극복의지인 셈이다. 


#8  박주선은 민주당을 택했다


민주당은 그를 버린 당이다. 민주당은 미래의 희망보다 과거의 영광을 먹고사는 당이다. 현재의 위상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 속에서 박주선이 만들어낼 미래는 어떤 것일까.

2005년 12월 2일. 박주선은 입당 기자회견에서 화해와 통합의 정치를 선언했다. 부당한 권력의 힘에 의해 좌절됐던 정치적 꿈을 실현하기 위한 날개를 다시 펼친 것이다.


“저는 지난날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법난에 휩싸여 세번의 구속과 세번의 무죄를 받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증오와 복수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열린 세상을 위하여 용서와 화해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제가 오늘 민주당에 입당하는 이유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이루어내려는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표로 하는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은 우선 민주개혁을 추진하여온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실용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치세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룩하여 국리민복과 국가선진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비전있는 실용적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강력히 호소하며,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운동에 저 스스로 앞장 설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저는 정치란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정치재개를 선언하며 앞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늘 함께 하겠다는 마음으로 입당의 변을 대신하겠습니다.”)

댓글목록

gunner님의 댓글

gunner 작성일

정치의 정점은 도덕적 사상, 관념 등 주관적 확신의 최고점이 아닐까요. 다소의 절충된 의미의 중도라면 그것은 정신의 영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단지 공허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그 구체적인 정책의 입안 등 정치적인 활동에서는 필요한 개념이 될수도 있겠지오.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편가르기에 힘을 더하는 영역에서는 중도라는 말은 행간으로 처리하심이 어찔런지.....
한편 박주선의원님의 인터뷰를 보면.. 항상 목표에 대한 그 실질적인 방법과 현실적인 예를 들어 풀이하는 탁월한 지혜에 놀라움을 느낌니다. 19대에 기대하여 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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